Monthly Archive für September 2010

그 말도 맞다.

돈이란걸 너무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살다보니, 그 말도 맞다.
너무 가진게 많아도, 너무 가진게 없어도 좋다는 않다.
그저 남들 가진 만큼만, 없는 만큼만 가지고 안가지는게 가장 적당하다.

사람들과 같이 살아 갈려면 그 말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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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2010

아침에 청소를 하고, 큰 양초를 밝혀놓고, 간단한 나의 주식들을 차려놓은체
나름의 차례를 지냈다.

이름모를 조상님들,  아빠, 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엄마랑 동생들이랑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또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을 빌었다.

지금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푸념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차례를 지내고 나니, 매일 먹던 라면도, 느낌이 완전히 다른 라면이었다.

그나마 온라인의 트위터를 통해서, 몇몇 사람들과 추석의 분위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다행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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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씨는 요즘 여자 안만나요?

동호씨는 요즘 여자 안만나요?

라는 다소 진지한 질문을 오랜만에 들었다. 매일 매일 나라,나슬,레이랑 같이 있으면서 2-3일에 한번씩 사람과 말을 한다.
편의점에 담배와 라면을 사러 가면서, 편의점 직원에게 수고하세요.. 라는.. 어떨때는 그런 대화도 안할때도 많다.

집에서 혼자 작업하면서, 여전히 온라인 활동은 이리저리 하는 편이어서,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에서 마이스페이스에서 메신져에서, 남자, 여자들과 대화도 자주 하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관심이 가는 이성들에게 있어서도, 그냥 멋진 캐릭터를 가진 여성이기보다,
좀 더 진지한 관심이 드는 이성들도 있었지만, 내가 나에게 자신감이 많이 없어진 상태였다.

나 같은 놈,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놈, 고집이 지독한 놈…
이렇게 초라하게 사는 나를 일반적인 그 어떤 여자가 쳐다봐주기나 할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그래서 난 옛날부터,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관심도 없을뿐더러, 나 만큼이나 지독한 색깔을 지닌 사람들을 좋아했다.

요즘 내 눈에 보여지는 그런 멋진 이성들도 있다. 하지만, 다가서야지 하는 마음 이전에, 그네들이 뭐가 아쉬워서 나 같은 놈을 바라봐줄까..
하는 작아져버린 내 사랑의 용기로 인해, 먼저 차단시켜버릴때가 허다하다.

그럴때마다, 늘 그래왔듯이.. 인연이 될 사람은 알아서 스스로 만나기 마련이라는.. 내가 늘 하는 말 처럼 때가 되면 만날 것이다. 라는 것처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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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Camera History

꽤 오랫동안 나는 사진에 푹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카메라만 해도 13대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던 시절도 있었고, 여행도 많이 다녔었다.
인화, 현상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다양한 사진장르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내가 좋아했던 카메라 브랜드는 늘 고정이었다.

일반 카메라 캐논, 올림푸스 클래식 카메라는 레이카, 롤라이, 이외 러시아와 독일 카메라 브랜드

클래식 카메라는 저렴한 것들은 아주 저렴했으나, 이름이 오랫동안 알려진 녀석들은
무지 비싸서, 만져보기만 했었지, 품어볼 순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레이카는 카메라의 로망이었다.

여기서 말하려는건 클래식이 아니라 내가 캐논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연애사진이란 꽤나 오래전에 나온 일본영화가 있다.
청춘 남여의 러브스토리인데 그 매게체가 사진이었다.
그 남자 주인공이 사용했던 기종이 캐논 old 수동의 최고 기종인 nF-1 이란 녀석이었다.
물론 렌즈들도 FD 렌즈 최고들이 등장했지만..
다른 주제들에 비해서 사진에 대한 영화들이 그리 많지 않은 가운데 봤었던 영화여서 그런지..
그 전에도 유독 캐논만 좋아했었는데, 그 영화 이후로 더 캐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요즘 시대의 카메라 브랜드 중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캐논과 니콘.

이상하게 니콘은 항상 별 관심이 생기질 않았다.

모든 카메라들이 카메라 마다 셔터음과 각각의 개성들이 다르다.
그런 가운데 니콘과 캐논 역시나 그 색감은 너무나도 다르다.

캐논은 정확하고, 컬러풀하고, 다소 직선적인 느낌인데,
니콘의 경우 약간은 구름 많은 햇살 가득한 오후의 느낌이라 해야하나..

니콘에 관심이 안생겼던게 어설프게 필름을 따라한다는 그런 느낌 때문일까..

하지만 캐논이나, 니콘이나 필름 카메라를 써봐도 동일한 필름을 사용했음에도 그 두 브랜드의 차이점은..
디지털 카메라에서 느껴지듯이 그대로 느껴진다.

어쨌든, 난 캐논 카메라를 좋아하는데, 왜 캐논 카메라의 history를 이제서야 관심있게 봤을까?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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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내 생산된 고급 35mm 카메라의 서막라이카와 콘택스 – 가장 앞선 35㎜ 포컬 플래인 셔터 카메라의
두 대표 상표 1932년에 “라이카 모델 II”가 소개되고, 1933년에 “콘탁스 모델”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세계 카메라 왕국 독일의 자존심인 이 두 상표는 전세계 카메라 팬들을 만족시켰으며 그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최상급 카메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일자리였던 은행에 취직한 일본 유명 대학 졸업생의 평균 초임이 약 월 70엔 이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라이카 카메라의 가격은 420엔이었습니다.
이러한 최고급 카메라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다까네 노하나(잡을 수 없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라이카 모델 II” 카메라를 분해하여 그 내부 작동을 연구함으로써 최초의 일본내 포컬플래인
셔터 거리계 카메라(이하 35mm 거리계 카메라로 칭함)의 제작을 시도한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시다 고로(1900-1993) 씨였습니다.
요시다 씨는 히로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중학교 과정을 마치기 전에 도쿄로 와서
활동 사진 카메라와 영사기를 수리하고 개조하는 회사의 견습공이 되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 그의 나이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그는 직무상 필요한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자주 여행했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상하이에서 만난 한 미국 무역상 로이 E 딜레이 씨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후 고급 35mm 거리계 카메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왜 카메라 부품을 사러 여기까지 왔습니까? 당신 나라는 이미 훌륭한 군함과 비행기를 생산했습니다.
당신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군함을 생산할 수 있다면 고유의 카메라 부품을 못 만들 이유가 없지요.”-
천성적으로 요시다 씨는 기계와 기기들을 수리하는 일을 좋아했고,
이미 그는 활동 사진 카메라와 영사기를 수리하고 개조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시다 씨가 카메라 제조에 매력을 느꼈음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일본제 고급 35mm 카메라를 만들기 위해 라이카를 분해했던 동기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요시다씨는 후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나는 특별한 계획 없이 단순히 부품을 보려고 그냥 그 카메라를 분해했습니다. 카메라 안에 다이아몬드와
같은 특별한 물건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메라의 부품들은 황동, 알루미늄, 철 및 고무로 만들어진
물건들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값싼 물건들이 조립되어 카메라가 되었을 때 엄청난 가격이 된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 사실은 나를 무척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처남 우찌다 사부로(1899-1982)와우찌다의 옛 수하였던 마에다 다께오(1909-1975)와 함께,
요시다 씨는 35mm 거리계 카메라를 개발하기 위해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그 연구소는 도쿄 롭퐁기 아자부 구(현재 미나토 구)에 있는 우아한 3층 아파트(다케카와야 빌딩)의
한 방에 위치했습니다. 그러나 요시다 씨는 카메라를 생산하기 위해 연구소가 취한 접근 방식이
그가 원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았으므로 1934년 가을에 그 연구소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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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좋은 잠수함은 이고입니다. 가장 좋은 비행기는 모델 92입니다.

가장 좋은 카메라는 관음입니다. 그들은 모두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입니다.

이 글은 아사히 카메라 잡지 1934년 6월호에 실렸던 일본에서 생산된 35mm 거리계 카메라의 표준형
“관음”에 관한 대담한 광고 카피였습니다.

표준형 카메라의 이름은 요시다 씨가 “자비의 불교 여신, 관음”의 신봉자였으므로
“관음” 이라 지었습니다. 카메라 로고는 수천개의 팔을 가진 관음 여신을 묘사했고, 렌즈의 이름까지도
부처의 제자인 마하카샤빠의 이름을 따서 “카샤빠”라고 했습니다.
전체 3개의 카메라 종류가 광고에 나타나 있으나,
그 카메라들은 모두 그림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모델이었으며, 실제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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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면, “관음”은 결코 실제로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요시다 씨가 10대의 “관음” 카메라를
완성했다고 증언했지만, 실제로 그 중 한대라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서기 1955년경에 발견된, “관음 모델 D”라고 불리는 카메라가 한 대 있었으나, 그것은 “라이카 모델 II”
의 복제품이었고 요시다 씨가 만든 카메라가 아니었습니다.“관음 모델 D”의 제작자는 아직도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아무튼 최초의 일본 고급 35mm 거리계 카메라의 제조는 독일이나 다른 서방 국가에 뒤지고 싶지 않았던 한 엔지니어의 자긍심과
꿈의 결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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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 카메라를 상용화하기 위해 이루어진 집중적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는 아직 카메라의 중요 구성 부품인 렌즈와
거리계를 조달할 전망이 없었습니다. 번민의 숙고 끝에 연구소는 Nikkor의 렌즈를 이용하기 위해 니뽄 고까꾸 고교(일본 광학 산업 주식회사,
니콘 주식회사의 전신임)로부터 협조를 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니뽄 고까꾸는 군사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최신의 제조 시스템을 갖춘 일본 최대의 광학 장비 제조 회사로
그 위치를 이미 확립하고 있었습니다. 한 때 니뽄 고까꾸의 회계사였던, 우찌다 사부로씨의 형인
우찌다 료노수께씨가 우찌다 사부로씨를 실무 담당의 부사장인 호리 도요따로씨에게 소개하였습니다.
그 당시 니뽄 고까꾸의 정책은 민간용 제품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었고, 호리씨는 비 군사 제품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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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급 렌즈의 민간 응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의 협조 요청 시기는 완벽했습니다.
양측의 이익을 인식한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와 니뽄 고까꾸는 니뽄 고까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한사 캐논(Nikkor 50mm f/3.5 렌즈를 장착한 표준 모델)” 개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공동 개발하에 최초의 캐논 카메라가
1936년 2월에 시장에 소개되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실제 날짜가 1935년 10월이라고도 하지만). “한사 캐논”을 제조하기 위해, 니뽄 고까꾸는 렌즈,
렌즈 마운트, 뷰파인더의 광학 시스템과 거리계 메커니즘을 맡았고, 반면에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는 포컬플래인 셔터를 포함한 본체,
카메라 본체의 조립은 물론 거리계 커버 제조를 맡았습니다. 후에 “관음”이라는 이름은 재판을 위한 표준 또는 성경을 뜻하는 “캐논”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정밀을 좌우명으로 노력하는 정밀 산업 회사의 새로운 상표, “캐논”은 이 무렵 태어났습니다.
“한사 캐논”이 출시되었을 때,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판매 채널이 없었으므로 오미야 샤신 요힌 주식회사(오미야 카메라 및 부품 판매상)와 독점 판매 및 상표 표시 계약을 사전에 맺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사”는 오미야의 상표였으며, 중세 유럽 도시의 상인 조합 중 한사 동맹에 그 어원을 두었습니다.

1936년 6월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는 메구로 구로 이전하고 당시 전국적으로 불고 있던 국수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그 이름을 일본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로 변경했습니다.
새로운 회사 이름이 공공 매체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아사히 카메라 1936년 8월호에 게재된 “한사 캐논” 카메라의 광고에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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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기사가 아사히 카메라 1935년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한사 캐논 카메라… 캐논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라이카의 모방품이다. 콘택스의 영향도 약간은 엿볼 수 있으나,
주요 기능들을 라이카를 본떠 만들었다. 카메라 크기는 13.5cm x 6.8cm x 4.5cm이고 무게는 대략 650그램이다. 특수한 필름 매가진을 사용하고,
렌즈는 니뽄 고까꾸의 Nikkor 50mm f/3.5이다. 렌즈는 분리 가능하고, 후면에 있는 단추를 누름으로써 지정된 위치로 팝업되도록 설계되었다.
스냅 촬영 케이스를 포함하여 275엔이다.

”카메라 산업 일각에서 “한사 캐논”을 라이카의 일제 모방품이라고 불렀지만, 일본의 최초 고품질 35mm 거리계 카메라를 대표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비록 아직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제조 회사의 제품이었지만,
이 카메라는 카메라 산업의내 외부로부터 상당한 관심과 기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내용 출처 : http://www.canon-ci.co.kr/actions/CompanyUserHistory1933Fix?cmd=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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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사양

브랜드 캐논

바디
550d 최신1,067,000 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918&ctg_id=100001

500d 869,000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644&ctg_id=100001

렌즈1 광각 줌 렌즈
EF 28mm f/1.8 USM 666,000 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103&ctg_id=200034

EF 28mm f/2.8 347,000 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754&ctg_id=200034

렌즈2 표준렌즈 EF 50mm f/1.8 II 가격 122,000 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662&ctg_id=200036

렌즈3 망원렌즈 70-300 (개인보유중)

배터리 그립 BG-E8 170,000 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Acc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987&ctg_id=300003

핸드스트랩 HAND STRAP E1 25,000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Acc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312&ctg_id=300004

플래쉬
SPEEDLITE 580EX II 578,000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Acc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32&ctg_id=300001

SPEEDLITE 430EX II 350,000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Acc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32&ctg_id=300001

리모컨 RC-6 30,000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Acc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991&ctg_id=300005

메모리
Transcend 4G SDHC (class6) 24,000원
http://www.canon-ci.co.kr/actions/EstoreAccGoodsDetailView?cmd=view&goods_code=604&ctg_id=300031

20100917 http://www.canon-ci.co.kr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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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Field

sketch-241-final

이런 그림들도 내 감성이랑 잘 통한다. 약간은 일본스럽기도 하지만..
우연히 발견한 일러스트 사이트 썸필드 http://www.somefie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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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e eun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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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가씨가 내 조카라고 하네. 음.. 음.. 음..
늘 아기를 별로 좋아하진 않아왔었는데, 역시나 내 조카라고 하는 이 친구에게도..별 관심이 생기진 않는데..
그래도, 기분이 좀 묘하긴 하다.

강래은 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는데, 스타일 안 좋으면 인정 안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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