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 für February 2010

L

이 책을 사야겠다.

2월 25일인가 24일인가 코엑스에서 11만원짜리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강의가 있는데, 돈이 없어서 가질 못하지만…

곧, 돈이 만들어지는데로 10만원짜리 매켄토시와 3만원짜리 모니터와 이 책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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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것

독특한, 신선한, 새로운 디자인이란 것은…
어쩌면 위의 것은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며, 그 만큼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남들과 차별되는 그런 개성을 각각 저마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 수련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여러가지 이유들로 타협을 하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새로움이란 어찌 다르게 해석을 해보면,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즉, 창조가 아니라 원래 있던 건데 그것을 드디어 발견한 것이라도고…

2001년 나의 첫 웹사이트를 만든 후 지금 2010년.

횟수로 10년의 시간이 흘러왔다.

나의 디자인이 신신한지, 새로운지는 적어도 나는 못느낀다.
난 그저 내 감정을 표현할 뿐이니까.

그러나 10년이란 시간을 살아오면서 나도 듣는 귀가 있지 않겠는가..
나만의 색깔이 점점 뚜렸해짐을 느낀다.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새로운, 신선한 요소가 될 수도 있었었다.

나 또한 어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때, 또는 다른 외계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다른 행성들의 생각들에 놀라곤 하니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이렇게 내 색깔을 남들과 차별을 두면서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것들, 독특한 개성들이 아닌 트렌드.
누구나 다 하는 것들, 유행하는 것들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반적인 것을들 뛰어넘어야지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바꾸어 말하면 일반적이다 라는 것은 그만큼 위대하다라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이 기본, 베이직이라는 말이다. 그런 탄탄한 베이직이 없이는 절대 깊이 있는 색깔을 뽑아 낼 수 없다.

나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베이직의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정말 운이 좋게도, 20대 초반 회사라는 곳은 나에게 베이직을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지독하리라만큼 기계적인 반복숙달.

30대가 가까워질 때즈음 느꼈었다. 그 반복숙달이 얼마나 탄탄한 기본을 만들어 주었던가..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전혀 신선하지 않은 것일 수 있겠지만, 디자이너로서 남들에게 신선하게 새롭게 보여질 수 있는 이유는..

일반적인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가능 한 것이다.
1도 모르면서 2를 알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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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컨셉 뜬금없이 확정

리드미컬, 다이나믹

영상,디자인,타이포그래피,사진,그리드,스타일,글,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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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었다. 마음의 여유.

0213 001 0213 002 0213 003 0213 004 0213 005 0213 006 0213 007 0213 008 0213 009

오늘 아침 참 오랜만에 해장국 돈가스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3년이지났건만, 여전히 가격은 3,000원.
그리곤 favorite cafe 인 석촌호수 탐앤탐스로 가서 웹서핑과 공부를..

참 오랜만에 가져보는 마음의 여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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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d touch app GoodReader

먼저 이 어플리케이션을 찾게 된 이유는 내 컴퓨터에 있는 텍스트파일들을 아이팟터치로 옴겨서 틈틈히 읽고 싶어서 여러 어플리케이션을 찾던 도중 가장 괜찮은 녀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른 유명한 어플리케이션은 무선접속을 통해서만 업로드/다운로드를 할 수 있는 반면에, 굿리더는 컴퓨터와 바로 연결가능했었다.

먼저, GoodReader 어플리케이션을 유료로 구입하던, 어둠의 경로로 다운을 받던,GoodReader를 아이팟터치/아이폰에 설치를 한다.

그리고 텍스트파일과 이미지파일(사진등의 이미지파일은 아이튠즈를 통해서라도 충분히 가능하니..)등을 컴퓨터에서 아이팟터치/아이폰으로 옴기기 위해서는 iFunBox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예전에 iFree 를 써서 파일전송을 했었는데, iFunBox 가 훨씬 편한듯 하다.

아이팟터치/아이폰로 옴길 파일을 준비해놓은 상태에서, iFunBox를 실행시킨다.
그리고 GoodReader 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설치되어 있는 폴더의 번호는 아마 각각의 아이팟터치/아이폰마다 다를 것이다.

찾는 방법은 iFunBox를 실행시킨뒤,

Ipod > 파일시스템 > Private > var > mobile > Applications >

여기서 아래의 스크린샷과 같이 찾아야 한다.

gr-search1

위의 스크린샷과 같이 어플리케이션 폴더안에 여러 번호와 영문조합의 폴더들을 열어보게 되면 그 안에 이름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gr-search2

GoodReader 폴더를 찾은 다음 텍스트파일과 이미지파일등은 도큐먼트 폴더 안에만 넣어주면 된다.
각자 보기 편한데로 폴더를 만들어서 넣어주던 그냥 넣어주던.

* 주의 : 텍스트파일의 경우 한글,영어파일명은 상관이 없는데, 인코딩 형식을  UTF-8 로 저장을 해주어야 한다.

그냥 일반형식으로 저장을 하니, GoodReader 에서 읽혀지지가 않았다.

gr-save

위와 같이 GoodReader를 아이팟터치/아이폰에 설치한 뒤, iFunBox를 이용해서 폴더를 찾아서 아이팟터치/아이폰에 업로드 한 뒤 아이팟터치/아이폰에서 GoodReader를 실행시켜보면 아래와 같이 편리하게 보고 읽을 수 있다.

IMG_0030 IMG_0025

실행시키면 로딩화면이 뜨고 그 다음 iFunBox에서 봤던 도큐먼트 폴더가 마이 도큐먼트로 나타난다.

IMG_0026 IMG_0027

마이도큐먼트를 눌러서 들어가보면 iFunBox에서 직접 만든폴더와 업로드한 텍스트파일과 이미지파일이 보인다.

IMG_0028 IMG_0029

이미지를 볼때와 글을 읽을때의 스크린샷.

글을 읽는 어플리케이션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세팅이 가능하며, 아직 해보진 않았지만, 웹에서 바로 다운도르 하는 기능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최고의 장점은 나 처럼 컴퓨터와 아이팟터치를 같은 무선네트워크에 위치시킬 수 없는 경우, 컴퓨터에서 바로 아이팟터치/아이폰으로 업로드/다운로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나에게 유용한 어플들이 내 아이팟터치에 깔려 있는데, 천천히 소개를 할 것이다.
어찌쓰다보니…전부 반말로 쓰게 되었네…

혹, 읽으시는 분들 불쾌히 생각치 마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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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 Ruder – Typography 중에서..

emil_ruder_typography

4번은 읽었던거 같다.
오늘 탐앤탐스에 앉아서 나름의 총정리를 해봤다.
그리드 책도 한번 더 읽고, 총정리를 한 뒤, 그리드를 넘어서로 넘어가려한다.
에밀루더의 타이포그래피 중에서 가장 와닿았던 내용들을 정리해봤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단연 최고는 노자 도덕경 11장이었다.
타이포 그래피와 디자인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
지금 이 시대는 모더니즘의 수많은 기본 가설과 전제 조건들을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보다 좋은 디자인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열망 또한 당연시되는 듯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그다지 깊이 신뢰할 것이 못 된다.
현대라는 허울을 쓴 사이비 장인정신과 가식적인 허세들이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타이포그래피는 그래픽 디자인 이상으로 기술과 정확성, 그리고 질서가 있는 표현이다.
표(table)작업은 타이포그래퍼가 재료를 배열하는 기술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때 순수한 형태상의 요구 또한 외면해서는 안된다.
표의 구성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기술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단순한 열차 시간표 한 장이, 현란한 색채와 도형이 가득한 작업보다 더 훌륭한 작품이 돌 수도 있다.
리듬이 없다면, 삶이 있을 수 없고, 아예 창조 자체가 있을 수 없다.
모든 피조물은 리듬에 맞춰서 그 나름대로 성장 단계를 거친다.
바람의 영향을 받아 숲과 옥수수밭과 모래사장이 리듬에 맞춰서 움직인다.
기계의 출현은 리듬이란 것이 노동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일하는 사람의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평형 감각이 리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타이포그래피에서는 이 리듬을 활용할 기회가 많다.
직선과 곡선, 수평선과 수직선, 사선적 요소, 시작과 끝 등이 서로 합쳐져서 하나의 리드미컬한 패턴을 만들어 낸다.
어센더와 디센더, 곡선과 점형, 대칭과 비대칭 등의 리듬 요소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히브리 사각글 (b.c 2-1세기),데바나가리 글자(11세기), 루닉 글자(스웨덴), 아라비아 옛 왕국 사바의 비문, 고대 바빌로니아의 쐐기글자,고대 페르시아의 쐐기글자, 고대 아라비아 퀴픽 글자 등 낯선 글자 형태는 비록 읽지는 못한다 해도 무언가 호소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글자들을 말하자면 하나의 예술 작품에 비견될 만한 형태적 유형으로 감상한다.
만일 우리가 그 글자들을 읽을 수 있다면, 그 글자들이 형태로서 갖는 매력은 금새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한밤중에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힌 브로드웨이를 바라보던 체스터턴은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누구도 그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참으로 매력적인 요술의 정원이로다!”
점점 더 모더니즘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느 가운데, 좋은 타이포그래피라면 일단 쉽게 읽을 수 있어야하며, 형태는 그 다음 문제다.
우리의 감수성, 즉 시각적 인식과 심미적인 감각은 기하하적 구성보다 우선하며, 따라서 우리는 서로 대립되는 흑백의 균형을 맞출때 반드시 이 감수성에 호소해야 한다.
구체미술 선언문에서 구성주의 회화의 대표자인 테오 반 되스부르크는 1930년에 이런 글을 썼다.
“구성은 배열(장식) 및 조립과 전혀 다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각기 다른 취향에 따라 각자의 감수성을 통해서 구성을 감상하기 때문이다. 만일 손으로 직선을 똑바로 그을 수 없다면, 우리는 자를 사용해서 선을 긋는다. 만일 맨손으로 원을 그릴 수 없다면, 우리는 컴퍼스를 이용해서 원을 그린다. 더욱 큰 완벽성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인간이 개발해낸 모든 기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928년 바우하우스 지에서 폴 클레는 구성에 대한 강한 회의를 표명했다.
“우리는 구성에 구성을 거듭하지만, 직관은 여전히 훌륭한 것이다. 직관 없이도 상당히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모든 것들 만들어낼 수는 없다.”
사람의 기관인 눈에 제대로 보이는 활자는 만들 수 없다.
눈은 수직선보다 수평선을 크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리적 착시를 단순히 환상 정도로 무시해서는 안된다.
창조적인 예술가들은 이 착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인간이 창조적 활동에서 활용하는 모든 수단은 그 나름의 수치와 범위를 가지고 있다.
건축에서는 공간을 둘러싸는 면들과 그것에 의해 둘러싸인 체적이 있다.
그러나 타이포그래피는 이차원적인 공간에 한정된다.
공간이란 한 가지 값만 존재해도 비례의 문제가 일어나는데 이는 가로, 세로, 높이의 관계가 정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여러 수단이 작업에 도입되면, 진정한 비례의 문제, 즉 일정한 크기의 관계 속에서 몇몇 요소들을 조직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수세기 동안 중세의 신비주의로 부터 르네상스의 비례 체계를 거쳐 르 꼬르뷔제의 모듈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서로 다른 차원을 가진 대상들을 일정한 규칙들과 고정된 수치 체계에 종속시키고자 노력해왔다.
이러한 노력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과를 초래했다.
첫 번째는 감정과 직관에 의해 창조되어 나중에 수치 패턴에 맞춰진 작품이 계산으로 도출된 원리에 근거하여 구성된 작품과 나란히 한 자리에 놓이는 잘못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무능을 부추기는 버팀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르 꼬르뷔제의 모듈은 경험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오랜 동안의 창조적인 삶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젊은 건축학도들에게는 똑같은 모듈이 오히려 위험한 함정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색채에 숫자를 매겨 올바른 색채만을 한데 모아 정리하려던 오스왈드의 대대적인 노력도 실질적인 색채 문화에 사실상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비율체계가 아무리 교묘하다 해도, 타이포그래퍼를 대신해서, 하나의 값과 다른 하나의 값이 어떻게 관련을 맺어야 할지를 결정해줄 수는 없다.
그는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개별적인 값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주어진 비율이 어느 정도까지 효과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자신의 비례감을 훈련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타이포그래퍼는 조화를 해칠 정도로 여러 값들 사이의 긴장이 커지는 경우가 어떤 때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긴장이 없다면 너무 단조로워지기 때문에 이와 동시에 긴장이 없는 상태를 피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긴장이 너무 강한가 아니면 약한가 하는 것은 타이포그래퍼가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에 입각해서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결정인 것이다.
이른바 3:5:8:13 황금률이라는 것도, 어떤 작품에는 훌륭히 적용되지만, 또 다른 작품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엄격한 수치를 바탕으로 하는 원리는 항상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클레와 칸딘스키는 선이 점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모든 형상이 비롯되는 곳, 즉 움직임이 시작되는 점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모든 것은 움직인다. 점이 움직이면 선이 생겨나고, 선이 움직이면 평면이 생겨나고, 평면이 모이면 입체가 생겨난다.
대비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은 혼란스러운 사고방식이 아니다.
대비도 조화로운 전체 속에서 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립을 통해서만 실재할 수 있는 개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위와 아래 또는 수평과 수직 따위가 그러하다.
현대인은 대비를 떠나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평면과 공간, 멀고 가까움, 안가 밖이 더 이상 어느 하나만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
둘 중의 하나 뿐만 아니라 둘 다도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사람들은 작품을 창조하면서 리듬감을 중요시해왔고, 이에 건축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비록 일정한 분할로 이루어지는 그리드 설계에 따라 이루어지는 건축은 일종의 논리적인 절차로 여겨졌을 수도 있지만…
체계 자체가 명쾌함 및 정확한 비례에 근거하는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결과물들은 대단히 낯선 것이다.
기법, 디자인, 조직과 관련된 모든 것은 예기치 않고 일어나는 우연성을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계산되고 계획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우리는, 형태적인 아름다움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기법상의 약점들을 독특한 매력으로 승화시킨 인쇄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작품들은 기법과 디자인에 관한 모든 야심을 제쳐두고 다만 그 기능만을 완수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보통 무명의 작가들인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지닌 그 시대의 진정한 기록물을 창조해낸 셈이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구겨진 종이 조각에서 보이는 우연성의 아름다움은 비틀리거나 제 자리를 벗어난 활자 더미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과거의 유용성은 사라졌지만, 무의미하게 나열된 활자들에 내재된 매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목적이 없다고 해서 그 자체의 아름다움까지 무시될 수는 없다.
낱말과 글줄로 구성될 때는 정적인 글자들도 읽는 방향에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다가 시선이 끝에서 다시 처음으로 옮겨가는 것과 발맞춰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며, 글줄이 추가되면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므로 타이포그래피에는 언제나 읽는 과정이 존재하게 마련이며 정적인 타이포그래피란 있을 수 없다.
창조적인 고백에서 클레는 고대인과 현대인의 자세를 운동에 비유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서 거기서 적절한 즐거움을 얻고 그 배의 편안함을 만끽한다. 그것이 바로 고대인이 사물을 그려내는 방법이었다.
자, 이제 현대인이 기선의 갑판을 걸으면서 무엇을 경험하는가를 생각해보자.
첫째는 자기 자신의 움직임이고,
둘째는 자신의 움직임과 반대 방향이 될 수도 있는 배의 움직임이고,
셋째는 강물이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이고,
넷째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고,
다섯째는 지구 운동의 궤도이고,
여섯째는 지구 주위를 도는 달과 별들의 궤도이다.”
타이포그래피는 아무리 간단한 형태에도 이러한 현대의 인식을 반영한다.

4번은 읽었던거 같다.

오늘 탐앤탐스에 앉아서 나름의 총정리를 해봤다.

그리드 책도 한번 더 읽고, 총정리를 한 뒤, 그리드를 넘어서로 넘어가려한다.

에밀루더의 타이포그래피 중에서 가장 와닿았던 내용들을 정리해봤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단연 최고는 노자 도덕경 11장이었다.

타이포 그래피와 디자인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

지금 이 시대는 모더니즘의 수많은 기본 가설과 전제 조건들을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보다 좋은 디자인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열망 또한 당연시되는 듯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그다지 깊이 신뢰할 것이 못 된다.

현대라는 허울을 쓴 사이비 장인정신과 가식적인 허세들이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타이포그래피는 그래픽 디자인 이상으로 기술과 정확성, 그리고 질서가 있는 표현이다.

표(table)작업은 타이포그래퍼가 재료를 배열하는 기술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때 순수한 형태상의 요구 또한 외면해서는 안된다.

표의 구성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기술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단순한 열차 시간표 한 장이, 현란한 색채와 도형이 가득한 작업보다 더 훌륭한 작품이 돌 수도 있다.

리듬이 없다면, 삶이 있을 수 없고, 아예 창조 자체가 있을 수 없다.

모든 피조물은 리듬에 맞춰서 그 나름대로 성장 단계를 거친다.

바람의 영향을 받아 숲과 옥수수밭과 모래사장이 리듬에 맞춰서 움직인다.

기계의 출현은 리듬이란 것이 노동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일하는 사람의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평형 감각이 리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타이포그래피에서는 이 리듬을 활용할 기회가 많다.

직선과 곡선, 수평선과 수직선, 사선적 요소, 시작과 끝 등이 서로 합쳐져서 하나의 리드미컬한 패턴을 만들어 낸다.

어센더와 디센더, 곡선과 점형, 대칭과 비대칭 등의 리듬 요소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히브리 사각글 (b.c 2-1세기),데바나가리 글자(11세기), 루닉 글자(스웨덴), 아라비아 옛 왕국 사바의 비문, 고대 바빌로니아의 쐐기글자,고대 페르시아의 쐐기글자, 고대 아라비아 퀴픽 글자 등 낯선 글자 형태는 비록 읽지는 못한다 해도 무언가 호소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글자들을 말하자면 하나의 예술 작품에 비견될 만한 형태적 유형으로 감상한다.

만일 우리가 그 글자들을 읽을 수 있다면, 그 글자들이 형태로서 갖는 매력은 금새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한밤중에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힌 브로드웨이를 바라보던 체스터턴은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누구도 그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참으로 매력적인 요술의 정원이로다!”

점점 더 모더니즘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느 가운데, 좋은 타이포그래피라면 일단 쉽게 읽을 수 있어야하며, 형태는 그 다음 문제다.

우리의 감수성, 즉 시각적 인식과 심미적인 감각은 기하하적 구성보다 우선하며, 따라서 우리는 서로 대립되는 흑백의 균형을 맞출때 반드시 이 감수성에 호소해야 한다.

구체미술 선언문에서 구성주의 회화의 대표자인 테오 반 되스부르크는 1930년에 이런 글을 썼다.

“구성은 배열(장식) 및 조립과 전혀 다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각기 다른 취향에 따라 각자의 감수성을 통해서 구성을 감상하기 때문이다. 만일 손으로 직선을 똑바로 그을 수 없다면, 우리는 자를 사용해서 선을 긋는다. 만일 맨손으로 원을 그릴 수 없다면, 우리는 컴퍼스를 이용해서 원을 그린다. 더욱 큰 완벽성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인간이 개발해낸 모든 기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928년 바우하우스 지에서 폴 클레는 구성에 대한 강한 회의를 표명했다.

“우리는 구성에 구성을 거듭하지만, 직관은 여전히 훌륭한 것이다. 직관 없이도 상당히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모든 것들 만들어낼 수는 없다.”

사람의 기관인 눈에 제대로 보이는 활자는 만들 수 없다.

눈은 수직선보다 수평선을 크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리적 착시를 단순히 환상 정도로 무시해서는 안된다.

창조적인 예술가들은 이 착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인간이 창조적 활동에서 활용하는 모든 수단은 그 나름의 수치와 범위를 가지고 있다.

건축에서는 공간을 둘러싸는 면들과 그것에 의해 둘러싸인 체적이 있다.

그러나 타이포그래피는 이차원적인 공간에 한정된다.

공간이란 한 가지 값만 존재해도 비례의 문제가 일어나는데 이는 가로, 세로, 높이의 관계가 정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여러 수단이 작업에 도입되면, 진정한 비례의 문제, 즉 일정한 크기의 관계 속에서 몇몇 요소들을 조직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수세기 동안 중세의 신비주의로 부터 르네상스의 비례 체계를 거쳐 르 꼬르뷔제의 모듈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서로 다른 차원을 가진 대상들을 일정한 규칙들과 고정된 수치 체계에 종속시키고자 노력해왔다.

이러한 노력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과를 초래했다.

첫 번째는 감정과 직관에 의해 창조되어 나중에 수치 패턴에 맞춰진 작품이 계산으로 도출된 원리에 근거하여 구성된 작품과 나란히 한 자리에 놓이는 잘못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무능을 부추기는 버팀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르 꼬르뷔제의 모듈은 경험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오랜 동안의 창조적인 삶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젊은 건축학도들에게는 똑같은 모듈이 오히려 위험한 함정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색채에 숫자를 매겨 올바른 색채만을 한데 모아 정리하려던 오스왈드의 대대적인 노력도 실질적인 색채 문화에 사실상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비율체계가 아무리 교묘하다 해도, 타이포그래퍼를 대신해서, 하나의 값과 다른 하나의 값이 어떻게 관련을 맺어야 할지를 결정해줄 수는 없다.

그는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개별적인 값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주어진 비율이 어느 정도까지 효과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자신의 비례감을 훈련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타이포그래퍼는 조화를 해칠 정도로 여러 값들 사이의 긴장이 커지는 경우가 어떤 때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긴장이 없다면 너무 단조로워지기 때문에 이와 동시에 긴장이 없는 상태를 피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긴장이 너무 강한가 아니면 약한가 하는 것은 타이포그래퍼가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에 입각해서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결정인 것이다.

이른바 3:5:8:13 황금률이라는 것도, 어떤 작품에는 훌륭히 적용되지만, 또 다른 작품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엄격한 수치를 바탕으로 하는 원리는 항상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클레와 칸딘스키는 선이 점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모든 형상이 비롯되는 곳, 즉 움직임이 시작되는 점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모든 것은 움직인다. 점이 움직이면 선이 생겨나고, 선이 움직이면 평면이 생겨나고, 평면이 모이면 입체가 생겨난다.

대비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은 혼란스러운 사고방식이 아니다.

대비도 조화로운 전체 속에서 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립을 통해서만 실재할 수 있는 개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위와 아래 또는 수평과 수직 따위가 그러하다.

현대인은 대비를 떠나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평면과 공간, 멀고 가까움, 안가 밖이 더 이상 어느 하나만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

둘 중의 하나 뿐만 아니라 둘 다도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사람들은 작품을 창조하면서 리듬감을 중요시해왔고, 이에 건축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비록 일정한 분할로 이루어지는 그리드 설계에 따라 이루어지는 건축은 일종의 논리적인 절차로 여겨졌을 수도 있지만…

체계 자체가 명쾌함 및 정확한 비례에 근거하는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결과물들은 대단히 낯선 것이다.

기법, 디자인, 조직과 관련된 모든 것은 예기치 않고 일어나는 우연성을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계산되고 계획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우리는, 형태적인 아름다움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기법상의 약점들을 독특한 매력으로 승화시킨 인쇄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작품들은 기법과 디자인에 관한 모든 야심을 제쳐두고 다만 그 기능만을 완수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보통 무명의 작가들인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지닌 그 시대의 진정한 기록물을 창조해낸 셈이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구겨진 종이 조각에서 보이는 우연성의 아름다움은 비틀리거나 제 자리를 벗어난 활자 더미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과거의 유용성은 사라졌지만, 무의미하게 나열된 활자들에 내재된 매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목적이 없다고 해서 그 자체의 아름다움까지 무시될 수는 없다.

낱말과 글줄로 구성될 때는 정적인 글자들도 읽는 방향에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다가 시선이 끝에서 다시 처음으로 옮겨가는 것과 발맞춰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며, 글줄이 추가되면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므로 타이포그래피에는 언제나 읽는 과정이 존재하게 마련이며 정적인 타이포그래피란 있을 수 없다.

창조적인 고백에서 클레는 고대인과 현대인의 자세를 운동에 비유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서 거기서 적절한 즐거움을 얻고 그 배의 편안함을 만끽한다. 그것이 바로 고대인이 사물을 그려내는 방법이었다.

자, 이제 현대인이 기선의 갑판을 걸으면서 무엇을 경험하는가를 생각해보자.

첫째는 자기 자신의 움직임이고,

둘째는 자신의 움직임과 반대 방향이 될 수도 있는 배의 움직임이고,

셋째는 강물이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이고,

넷째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고,

다섯째는 지구 운동의 궤도이고,

여섯째는 지구 주위를 도는 달과 별들의 궤도이다.”

타이포그래피는 아무리 간단한 형태에도 이러한 현대의 인식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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