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the Stories ‘I think about it.‘

Don McLean – Vincent

Don McLean – Vincent
(Starry Starry Night)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e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perhaps they’ll listen now.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and when no hope was left in sight on that starry
starry night.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But I could ha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Starry
starry night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Like the stranger that you’ve met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the silver thorn of blod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And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별이 많은 어느 날 밤,
팔레트를 파란색과 회색으로 칠해봐요.
그리고 내 영혼의 어두운 면조차
볼 수 있는 그런 눈으로
이 여름날을 잘 살펴보세요.
눈처럼 하얀 린넨의 세상 위에다가
언덕에 생긴 그림자들이나
나무들, 또는 수선화를 그려보고
겨울의 차가움이나 그 바람조차 유채색으로 그려봐요.
나 이제서야
당신이 내게 뭘 말하려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이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아왔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두요.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안았죠.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을거에요.
하지만, 아마도,
이젠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지도 모르겠네요.
별이 총총하게 박힌 어느 밤,
빈센트의 푸른 눈속에선
밝고 화려하게 반짝이는 선명한 색깔의 꽃들과
보라빛 안개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이 비춰지죠.
황갈색의 농작물로 가득찬 아침의 들판은
그 색을 바꿔가고,
고통으로 가득찬 상한 얼굴은
화가의 그 부드러운 손에 의해
다시 곱게 변해가죠.
나 이제서야
당신이 내게 뭘 말하려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이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아왔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두요.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안았죠.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을거에요.
하지만, 아마도,
이젠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할 수는 없었지만,
당신의 사랑은 진실한 것이었죠.
그리고 그 어떤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던
별이 많았던 그 밤,
당신은 연인들이 종종 그렇게 하듯,
당신의 생명도 앗아가버렸죠.
하지만요, 빈센트, 나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이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버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요.
별이 총총한 이 밤에,
빈 벽에 초상화들이 걸려있네요.
이름도 없는 벽에, 액자도 없이 걸려있네요.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런것들을 절대 잊지 않으면서 말이에요.
당신이 만났던, 그 낯선 사람들,
누더기 옷을 걸쳤던 초라한 남자,
깨끗한 눈위에 던져서 부서졌던
은빛 가시를 가진 피빛 장미,
이런 것들을 잊지 않으면서요.
나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내게 하고자 했던 말이 뭐였는지.
당신이 온전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았었는지,
그리고 또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었는지.
당신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지금도 들으려 하지 않네요.
아마.. 앞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Don McLean – Vincent

(Starry Starry Night)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e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perhaps they’ll listen now.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and when no hope was left in sight on that starry

starry night.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But I could ha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Starry

starry night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Like the stranger that you’ve met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the silver thorn of blod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And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별이 많은 어느 날 밤,

팔레트를 파란색과 회색으로 칠해봐요.

그리고 내 영혼의 어두운 면조차

볼 수 있는 그런 눈으로

이 여름날을 잘 살펴보세요.

눈처럼 하얀 린넨의 세상 위에다가

언덕에 생긴 그림자들이나

나무들, 또는 수선화를 그려보고

겨울의 차가움이나 그 바람조차 유채색으로 그려봐요.

나 이제서야

당신이 내게 뭘 말하려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이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아왔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두요.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안았죠.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을거에요.

하지만, 아마도,

이젠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지도 모르겠네요.

별이 총총하게 박힌 어느 밤,

빈센트의 푸른 눈속에선

밝고 화려하게 반짝이는 선명한 색깔의 꽃들과

보라빛 안개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이 비춰지죠.

황갈색의 농작물로 가득찬 아침의 들판은

그 색을 바꿔가고,

고통으로 가득찬 상한 얼굴은

화가의 그 부드러운 손에 의해

다시 곱게 변해가죠.

나 이제서야

당신이 내게 뭘 말하려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이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아왔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두요.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안았죠.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을거에요.

하지만, 아마도,

이젠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할 수는 없었지만,

당신의 사랑은 진실한 것이었죠.

그리고 그 어떤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던

별이 많았던 그 밤,

당신은 연인들이 종종 그렇게 하듯,

당신의 생명도 앗아가버렸죠.

하지만요, 빈센트, 나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이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버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요.

별이 총총한 이 밤에,

빈 벽에 초상화들이 걸려있네요.

이름도 없는 벽에, 액자도 없이 걸려있네요.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런것들을 절대 잊지 않으면서 말이에요.

당신이 만났던, 그 낯선 사람들,

누더기 옷을 걸쳤던 초라한 남자,

깨끗한 눈위에 던져서 부서졌던

은빛 가시를 가진 피빛 장미,

이런 것들을 잊지 않으면서요.

나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내게 하고자 했던 말이 뭐였는지.

당신이 온전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았었는지,

그리고 또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었는지.

당신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지금도 들으려 하지 않네요.

아마.. 앞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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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9

늘 여전히 언제나
흐르는 강물은 그대로 이구나.

비가 아주 아주 조금 내리는 여름의 한강.

오늘도 나라 나슬은 사람들 이쁨을 받으면서, 아니 정확히 말해 여자들에게
이쁨을 받으면서, 노래 하는거 처럼 울어댄다.

근데, 오늘은 기분이 좋아 울기보단, 우리 엄마 어디 갔냐고, 나에게 묻는듯
하다.

유난히 많이 짖어댄다.

나라 이녀석은 사랑의 불청객인가…..

커플만 보면 달려가서 인사하고 온다.

이 녀석도 나처럼 조울증인건지…

Sent from my iPod Touch
www.kangdong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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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세계를 부숴야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세계를 부숴야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learn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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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9일 오전 6시 14분

20100609 Listen to my think!

2010년 6월 9일 오전 6시 14분
29살,일부러 1년 동안 돈을 벌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내 볼을 따끔하게 했던 햇살, 바람과 나뭇잎 한장에 감사했다.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 나는, 슬펐다.
너무나도 행복해서..그 행복은,,,, 극에 달했으니…
bg
음양이론에서 말했었다.
음이 계속 음이 되지 아니하고, 양이 계속 양이 아니라 했다.
음과 양은 돌고 돌아 그 극에 달하게 되면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된다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서 .. 그것이 태극문양이었다.
bg
너무 행복해서 그 행복이 극에 달하게 되니,
그 행복은 슬픔으로, 걱정으로, 불안으로 바뀌어 버렸다.
행복을 계속 붙잡고 있고 싶은데,
행복이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슬퍼질 수 밖에 없었다.
bg
4년이 지난 지금 34살이 되어..
과거의 행복과, 지금 나의 이틀간의 행복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진심으로 행복해하면서 보낸 이틀이 지나가고,
만난 사람들과, 나와 마음을 나눈 사람들과
그런 이틀 지나가고..
또렷한 정신으로 책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작업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하는 순간..
이틀 동안의 행복은,
내 기분이 하늘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느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잠시 꿈을 꾼 것 마냥..
나는 아직도 겨울을 붙잡고 있는데, 가지말라고 가지말라고,
가끔 그런 꿈을 꾼다. 정말 그런 꿈을 꾼다.
bg
잠에서 깨어난 제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스승은 걱정이 되어 제자에게 물었다.
왜 우느냐?/꿈을 꾸었습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아닙니다.
그럼 슬픈 꿈을 꾸어느냐?/아닙니다.
그럼 어떤 꿈을 꾸었느냐?/아름다운 꿈을 꾸었습니다.
스승은 기이하여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이하여 눈물을 흘리느냐?
그러자 제자가 답했다.
그 꿈은,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bgm : 봄여름가을겨울 – 웃으며헤어지던날

2010년 6월 9일 오전 6시 14분

29살,일부러 1년 동안 돈을 벌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내 볼을 따끔하게 했던 햇살, 바람과 나뭇잎 한장에 감사했다.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 나는, 슬펐다.
너무나도 행복해서..그 행복은,,,, 극에 달했으니…

bg

음양이론에서 말했었다.
음이 계속 음이 되지 아니하고, 양이 계속 양이 아니라 했다.
음과 양은 돌고 돌아 그 극에 달하게 되면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된다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서 .. 그것이 태극문양이었다.

bg

너무 행복해서 그 행복이 극에 달하게 되니,
그 행복은 슬픔으로, 걱정으로, 불안으로 바뀌어 버렸다.
행복을 계속 붙잡고 있고 싶은데,
행복이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슬퍼질 수 밖에 없었다.

bg

4년이 지난 지금 34살이 되어..
과거의 행복과, 지금 나의 이틀간의 행복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진심으로 행복해하면서 보낸 이틀이 지나가고,
만난 사람들과, 나와 마음을 나눈 사람들과
그런 이틀 지나가고..

또렷한 정신으로 책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작업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하는 순간..

이틀 동안의 행복은,
내 기분이 하늘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느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잠시 꿈을 꾼 것 마냥..

나는 아직도 겨울을 붙잡고 있는데, 가지말라고 가지말라고,

가끔 그런 꿈을 꾼다. 정말 그런 꿈을 꾼다.

bg

잠에서 깨어난 제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스승은 걱정이 되어 제자에게 물었다.

왜 우느냐?/꿈을 꾸었습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아닙니다.

그럼 슬픈 꿈을 꾸어느냐?/아닙니다.

그럼 어떤 꿈을 꾸었느냐?/아름다운 꿈을 꾸었습니다.

스승은 기이하여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이하여 눈물을 흘리느냐?

그러자 제자가 답했다.

그 꿈은,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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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봄여름가을겨울 – 웃으며헤어지던날

Music : Elliott Smith – because

글 : 강동호 ( 마지막 나레이션 – 영화 달콤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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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를 통해 알게된 나만의 세상의 비밀.

1950년대까지 미국 문화의 가장 중심적 원류는 곧 퓨리턴 정신이라고 모두들 여겨왔다. 미국 문화에 기여한 개척정신이나 이민의 중요성이 아직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뉴잉글랜드의 퓨리턴은 영국에서의 박해로 미국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근원은 칼뱅교였다. 칼뱅 교도는 스코트랜드에서는 장로교라고 불리었으나, 잉글랜드에서는 그 나라의 종교개혁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영국교회를 더 정화(purify)해야 한다고 믿음으로써 퓨리턴이라고 불렸다. 사실 성공회는 교리와 형식에서 가톨릭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고, 개혁의 핵심적 부분은 국왕이 종교의 수장이 되어 바티칸으로 흘러 들어가던 십일조를 영국의 국고로 흡수하는 것이었다.
퓨리턴 정신
퓨리턴들은 독특한 교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예정설과 소명설이다. 그들은 전능한 신은 이미 인간의 운명을 예정해놓고 있으나, 원죄로 얼룩진 인간은 그 예정된 운명을 절대 알 수 없으며, 그것을 아는 것은 전지전능한 신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신이 이 세상에서 유용하게 쓰이도록 그에게 소명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었다. 이 소명은 현재 맡은 바 직분으로 가장 잘 나타나므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천직으로 받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막스 베버(Max Weber)는 칼뱅 교도들에게서 직업의 귀천 사상이 없어졌고,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관(Work ethic)이 세워졌으며,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를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사실 가톨릭은 대금업 같은 것을 죄악시하면서 신도들에게도 금하게 했다. 칼뱅 교도들은 이런 금기를 소명이라는 믿음으로 타파하면서, 맡은 바 직분을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일해서 세속적인 성공을 이루고 도시의 상공계층에 많이 퍼졌다.
퓨리턴은 유달리 원죄설을 신봉했는데, 아담과 이브가 지은 원죄 때문에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사람들은 바로 이 원죄를 끊임없이 속죄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청교도의 삶은 구원의 역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은 욕망에 의해 타락할 수 있는 요소를 지닌 원초적인 죄인임을 잊지 않고, 구원받기 위해 언제나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리는 극심한 도덕적 자세를 가졌다.
그들은 안식일에는 오로지 신만을 경배해야 된다는 성경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지켰기 때문에 뉴잉글랜드에서는 일요일에 청소를 한다든가 머리를 감더라도 처벌받았고, 심지어 불을 지펴 요리를 하는 것도 금했다. 그리하여 보스턴은 한때 ‘강낭콩 도시’로 불렸었는데, 이는 토요일에 콩을 미리 삶아 놓고 일요일에 찬 강낭콩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퓨리턴의 엄격성은 시간을 지키는 관습이나 정직성, 근면성을 발달시킴으로써 직업윤리를 한층 강화시키고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미국인은 대체로 유럽인에 비해 성적으로 덜 개방되어 있고 의복의 관습도 더 엄격하다. 그리고 공공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불법이다. 퓨리턴들은 음주를 죄악의 온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전통은 1920년대에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하자 금주법운동으로 전개되어, 드디어 술의 제조, 유통, 판매를 전국적으로 금지하는 헌법 수정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이 법은 사람들의 술 좋아하는 버릇을 고치기는 커녕, 술의 암거래로 조직범죄단만 키우게 되어서 10년 후 폐지됐다. 이 덕택에 미국은 밀주로 만든 독한 술을 마시는 것이 습관화되어 와인보다 위스키를 더 많이 마시게 됐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이주한 것은 신의 뜻에 합당한 도시를 세우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이 신념은 모범적 사회를 세우기 위해 사회성원들 간에 공익을 위한 사회봉사정신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인들에게는 검약한 생활을 하면서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무료봉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전통이 내려온다. 퓨리턴들은 신의 뜻에 따라 모범적으로 살지 않으면, 천벌이 내려서 그들이 세운 식민지와 나라가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언제나 가졌다. 세일럼에서 일어난 마녀재판도 바로 이런 강박관념이 사회적 히스테리로 폭발한 것이었다.
마녀재판
세일럼(Salem) 타운에서는 1692~1693년에 마녀재판이 벌어졌다. 그것의 발단은 카리브 해에서 온 한 흑인 노예 소녀가 아이들을 돌보면서, 그곳의 아프리카 흑인종교인 ‘부두교’이야기를 들려주며 장난을 치며 놀다가 아이들이 기절을 하는 일이 벌어진 데서 일어났었다. 아이들의 진술을 듣고 그 노예 소녀를 조사한 결과, 그 소녀는 마을의 점잖은 두 부인을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들어가서 온 마을이 마녀의 이야기로 열병을 알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조사받게 되고 목사들은 경쟁하듯 여기저기서 회개하라고 외치며 마녀의 재앙에 대해 설교했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결국 14명의 여자와 5명의 남자가 처형됐다.
17세기 동안 뉴잉글랜드에서는 약 300명이 마녀재판을 받았고 그 중 36명이 처형됐다. 청교도는 종교적 자유를 찾아서 이민 왔으나, 다른 교파에 대하여는 편협하고 가혹했다.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퓨리턴 신정정치체제에 도전하던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나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는 이단자로 단죄받고 매사추세츠에서 추방되어 각각 로드아일랜드와 커네티컷 식민지를 세웠다. 또 ‘내면의 빛’을 설교하던 앤 허친슨(Anne Hutchinson)도 추방당해서 그의 신도 200-300명을 이끌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나서다 실종됐다.
그러나 마녀재판은 이 세일럼 재판을 계기로 미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은 마녀재판을 주관했던 목사들이 몇 년 후 자신의 그릇된 판단을 뉘우치며 공식적으로 회개를 하고, 또 사건이 발생한 후 20년 정도 지나서 억울하게 사형당했었거나 벌을 받았던 모든 사람들을 사면복권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면, 미국에서 마녀재판의 소멸은 서양의 역사에서 인권 향상을 위한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마녀재판이나 종교재판이 성행하고 있었다.
교육
신의 뜻에 합당한 식민지를 세우기 위해, 청교도들은 후세들을 올바르게 기르려는 대단한 교육열을 보였다. 매사추세츠 식민지가 세워진 지 6년밖에 지나지 않아서 주민들은 종교 전문인을 교육하기 위해 하버드 대학을 설립했다. 또 그보다 11년 뒤인 1647년에는 주민 모두가 글을 읽어서 성서를 해독할 수 있도록 보통 의무교육제도를 수립했다. 가구가 50호에 이르는 타운에는 1명의 교사를 두고 100가구가 되는 곳에는 초등학교가 세워졌다. 그리고 1690년 보스턴에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신문을 발행했다. 이렇게 해서 보스턴에 뿌리내린 지성의 전통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미국문화에 스며있는 퓨리터니즘
“나는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고 ‘하나님 아래(under God)’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나라인 나의 공화국과 그것을 상징하는 국기에 대해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국가와 국기에 대한 충성서약의 전문이다. 국적을 취득하는 기념식에서 이민 온 사람들은 손을 들어 이 서약문을 암송한다. 그리고 현재 50개 주 중에서 반 정도가 이 충성서약을 학교에서 암송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미국 문화에 스며있는 퓨리턴적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이 서약은 1892년 콜럼버스 날에 한 청년잡지가 학생들이 낭송할 수 있도록 짧은 문장을 실으면서 비롯되어 여러 학교에서 암송하게 됐다. 애초의 문장에는 ‘하나님 아래’라는 구절이 없었으나 아이젠하워 시대에 첨가됐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충성서약은 정부가 어떤 특정종교를 인정함으로써 기독교를 빋지 않는 자들에게 국외자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연방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 점점 자취를 감추어갔다. 한편, 9.11 테러 이후 달아오른 애국적 감정으로 많은 주들이 공립학교에서 충성서약 암송을 의무적으로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주정부도 이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계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밑에는 미국인은 신의 선택받은 후예라는 자긍심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우월한’ 삶의 방식을 세계에 전파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세계를 미국과 같이 개조하려고 한다. 미국은 그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의 많은 부분을 미국적 개신교로 개종시켰고, 많은 나라에서 전통사회가 무너지고 미국식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이런 것이 제3세계의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적 침략이나 외세의 간섭 혹은 위선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것에 괘념하지 않는다. 미국적 세계제패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청교도적 사명감이 깔려있다.

1950년대까지 미국 문화의 가장 중심적 원류는 곧 퓨리턴 정신이라고 모두들 여겨왔다. 미국 문화에 기여한 개척정신이나 이민의 중요성이 아직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뉴잉글랜드의 퓨리턴은 영국에서의 박해로 미국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근원은 칼뱅교였다. 칼뱅 교도는 스코트랜드에서는 장로교라고 불리었으나, 잉글랜드에서는 그 나라의 종교개혁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영국교회를 더 정화(purify)해야 한다고 믿음으로써 퓨리턴이라고 불렸다. 사실 성공회는 교리와 형식에서 가톨릭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고, 개혁의 핵심적 부분은 국왕이 종교의 수장이 되어 바티칸으로 흘러 들어가던 십일조를 영국의 국고로 흡수하는 것이었다.

퓨리턴 정신

퓨리턴들은 독특한 교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예정설과 소명설이다.

그들은 전능한 신은 이미 인간의 운명을 예정해놓고 있으나, 원죄로 얼룩진 인간은 그 예정된 운명을 절대 알 수 없으며, 그것을 아는 것은 전지전능한 신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신이 이 세상에서 유용하게 쓰이도록 그에게 소명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었다. 이 소명은 현재 맡은 바 직분으로 가장 잘 나타나므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천직으로 받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가는 것이다.

퓨리턴은 유달리 원죄설을 신봉했는데, 아담과 이브가 지은 원죄 때문에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사람들은 바로 이 원죄를 끊임없이 속죄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청교도의 삶은 구원의 역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은 욕망에 의해 타락할 수 있는 요소를 지닌 원초적인 죄인임을 잊지 않고, 구원받기 위해 언제나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리는 극심한 도덕적 자세를 가졌다.

미국인은 대체로 유럽인에 비해 성적으로 덜 개방되어 있고 의복의 관습도 더 엄격하다. 그리고 공공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불법이다. 퓨리턴들은 음주를 죄악의 온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전통은 1920년대에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하자 금주법운동으로 전개되어, 드디어 술의 제조, 유통, 판매를 전국적으로 금지하는 헌법 수정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이 법은 사람들의 술 좋아하는 버릇을 고치기는 커녕, 술의 암거래로 조직범죄단만 키우게 되어서 10년 후 폐지됐다. 이 덕택에 미국은 밀주로 만든 독한 술을 마시는 것이 습관화되어 와인보다 위스키를 더 많이 마시게 됐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이주한 것은 신의 뜻에 합당한 도시를 세우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이 신념은 모범적 사회를 세우기 위해 사회성원들 간에 공익을 위한 사회봉사정신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인들에게는 검약한 생활을 하면서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무료봉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전통이 내려온다. 퓨리턴들은 신의 뜻에 따라 모범적으로 살지 않으면, 천벌이 내려서 그들이 세운 식민지와 나라가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언제나 가졌다. 세일럼에서 일어난 마녀재판도 바로 이런 강박관념이 사회적 히스테리로 폭발한 것이었다.

마녀재판

세일럼(Salem) 타운에서는 1692~1693년에 마녀재판이 벌어졌다. 그것의 발단은 카리브 해에서 온 한 흑인 노예 소녀가 아이들을 돌보면서, 그곳의 아프리카 흑인종교인 ‘부두교’이야기를 들려주며 장난을 치며 놀다가 아이들이 기절을 하는 일이 벌어진 데서 일어났었다. 아이들의 진술을 듣고 그 노예 소녀를 조사한 결과, 그 소녀는 마을의 점잖은 두 부인을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들어가서 온 마을이 마녀의 이야기로 열병을 알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조사받게 되고 목사들은 경쟁하듯 여기저기서 회개하라고 외치며 마녀의 재앙에 대해 설교했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결국 14명의 여자와 5명의 남자가 처형됐다.

세계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밑에는 미국인은 신의 선택받은 후예라는 자긍심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우월한’ 삶의 방식을 세계에 전파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세계를 미국과 같이 개조하려고 한다. 미국은 그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의 많은 부분을 미국적 개신교로 개종시켰고, 많은 나라에서 전통사회가 무너지고 미국식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이런 것이 제3세계의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적 침략이나 외세의 간섭 혹은 위선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것에 괘념하지 않는다. 미국적 세계제패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청교도적 사명감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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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와 대충.

4-5일 전부터 틈나면 이 존재들에 대해 생각을 했었다.

커피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었던 소소한 것인데, 바로 적당히 식은 커피와 대충 식은 커피의 차이..

다른듯 같은듯…그냥 일상의 것이긴 하지만, 분명 뭔가가 있는거 같았다.

똑같은 건데, 기분이나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적당히”는 좋은 표현이고, “대충”은 그냥 좀 나쁘진 않지만, “적당히”만큼은 좋지 않은 표현이라는 것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모로그에 대해 1차 회의를 하기 위해, 홍대에서 만나 이야기를 충분히 나눈 뒤.

알콜을 나누게 되었는데, 아주 자연스레 내 입에서

“몇일전부터 틈틈히 생각해보는게, 적당히와 대충의 차이인데…”

발코씨는 다소 웃음을 보였었다. 그것에 대해 예전에 미리 충분히 생각을 해봤던 기억이 있었던 거이다.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밝힌 뒤,

“컵에 물이 있는데, 아직도 이만큼 남았네, 라는 것과 이거밖에 안남았네의 차이가 적당히와 대충의 차이가 아닐까요?

라면서 말을 했었다.

어쩌면 내가 습관처럼 너무 꼬아서 생각을 했을지도 몰랐다.

정말 그 차이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적당히와 대충 그 뒤엔 뭐가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난 이리 대답을 했다.

“음.. 그걸 구지 가릴 이유가 없을꺼 같아요.” 라고..

그냥 둬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잘 사용하고 있는 말인데, 왜 구지 저 두녀석,

적당히와 대충의 차이를 가려보려 했던걸까……

그 단어를 다시 생각해게 해주었던, 그 분과의 커피 대화 때문에 그걸 가려보려 했던 걸까..

아마 그 요인이 큰 듯하다.

적당히와 대충…  잘 쓰면 되는 것이고, 적당히, 대충 잘 조절해서 사용하면 된다.

적당히 대충 잘 써왔듯이, 앞으로도 대충 적당히 잘 쓰면 될꺼 같다.

나 자신에게 던졌던 이 질문은 발코씨로 인해, 나는 적당히와 대충을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다.

사용예)

일이 (적당히 or 대충) 정리되다.
일을 (적당히 or 대충) 끝내다.
범인의 윤곽을 (적당히 or 대충) 파악하다.
이번 사태는 (적당히 or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들은 (적당히 or 대충) 이렇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적당히 or 대충) 짐작이 간다.
저도 그 이야기를 (적당히 or 대충)은 들었습니다.
점심을 (적당히 or 대충) 때우다.
아침을 (적당히 or 대충) 걸치다.
(적당히 or 대충) 송당송당 꿰매다.

일이 (적당히 or 대충) 정리되다.

일을 (적당히 or 대충) 끝내다.

범인의 윤곽을 (적당히 or 대충) 파악하다.

이번 사태는 (적당히 or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들은 (적당히 or 대충) 이렇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적당히 or 대충) 짐작이 간다.

저도 그 이야기를 (적당히 or 대충)은 들었습니다.

점심을 (적당히 or 대충) 때우다.

아침을 (적당히 or 대충) 걸치다.

(적당히 or 대충) 송당송당 꿰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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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about 김치찌개 with balko.

김치찌개

발코씨의 어머님께서 어렸을때 발코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고 한다.

(잠시 발코씨를 발코라는 이름으로만 씁니다.)

늘, 발코네 집에서는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를 넣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발코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는 김치찌개를 먹게 되었는데,

그 친구집의 김치찌개에서는 참치가 들어간 김치찌개 였었다.

늘 집에서먹던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그래서 발코는 어머니에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왜 우리집에서는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만 넣고, 친구네 집에서는 참치를 넣고, 또, 어디에 따라선 김치만 넣을수도 있을 것이고,

쇠고기가 들어갈 수도 있을텐데.. 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답을 하시길..

각각 집집마다 김치찌개의 부재료들은 다를 수가 있고, 부재료로 인해서 각각의 김치찌개들의 맛은 달라지겠지.

그러나, 그건 모두 김치찌개다.

라는 말을 하셨다고 한다.

일상속에서 담겨 있는 어느 어머님의 철학이었고, 그런 가르침을 그리 일상 속의 것들로 풀어주셨던 어머님이..

나도, 그런 어른이 되려면 아직도 많은 내공수련이 더, 더 많이 필요하다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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