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한 희망

사람들이 그리 자신과 연관이 없는 것들 까지도그리 신경을 잘 썼었나?

그렇다면 세상 모든 사회문제는 적어도 지금보단 적었겠지??

그 많고 적음의 기준이 애매하지만 말이야.

말을 말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계속 말이란걸 해야 하나? 서로서로 각기 다른 주파수로 송출을 시키는데, 그러다가 언젠가 비슷한 주파수를 만나 서로 들려지고 들려줄 수 있도록?

아마 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희망을 뜻하는 것이니까.
그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할지라도…

인간의 본능들도 수양을 통해서 절제 할 수 있게 되지만, 희망을 버리는 인간이 있을까? 죽는 순간에도 죽음에 대한… 결과라 할까?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 대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알 수 없는 희망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어찌 들어주건 지금 해왔던 거 처럼 묵묵히 나가는게 내 선택이고, 고집이겠지. 나의 도에 대한 고집.

나는 계속 시도할 것이고, 도전 할 것이다. 늘 미약하지만 희망은 늘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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