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디자이너는 비움을 행할줄 아는 디자이너이다.

훌륭한 디자이너는 비움을 행할줄 아는 디자이너이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는 자신의 주장을 디자인 하기 보단 의뢰자의 주장을 비쥬얼로 대변,표현하는 사람을 디자이너라 부른다.
그런 맥락에서는 배우와 비슷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정우성이란 배우는 영화속에서 정우성이란 개인을 이야기하기 보단,
스토리속에 존재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 연기의 몰입력에 따라 사람들은 연기력을 논하곤 한다.
그 몰입력이란 나를 얼만큼 비워내는가에 따라, 얼만큼 비워낼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디자이너든 배우든 기본적인 필수 스킬은 당연한 것이며,
그런 일반적인 것들을 알아야 자신의 색깔을 알 수 있으며, 자아를 찾을 수 있다.

훌륭한 디자이너는 자신을 비우고 의뢰자의 색깔을 자신에게 입혀서 표현을 할줄 안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이너는 분명 의뢰자에게 물질적이던 정신적이던 보상을 받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보통 디자이너가 감사합니다란 말보다, 의뢰자가 디자이너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노자의 무위자연을 행함과 같은 것이다.
위인들이, 성인들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유 중 하나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행하지 않을 때가 비일비재한데, 위인들이나, 성인들은 자신의 욕심을
보다 많은 사람들보다 자제하고, 버릴줄 알기 때문에, 그런 행동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으로, 그런 것들을 비우고 버림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높이 보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며,

흙은, 땅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나무는 자라고, 하늘이 존재하며, 사람이 살아가고, 집에 세워지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한다 라는 무위자연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디자이너라 함은 중국고대철학에 비유해봤을때,
자신을 버리고, 비우고, 모든 사물을 바라봄에 있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고,
자신의 욕심보다는 남의 욕심을 들어주고 체워줄수 있는 사람이며,
도를 연마하는 성인이라고도 말을 할 수가 있다.

소설 속에서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인 것이며, 현대 정치에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정도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이 자신이 행하는 것에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3인칭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아닌 타인이 행하는 것에는 적어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마련이다.

공자가 말했듯이 사람은 물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물처럼 사는 이 한번도 본적이 없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노력을 행하며 사는 사람은 훌륭한 디자이너인 것이다.

또한, 훌륭한 디자이너는 중요한 눈,귀,입,코,손으로도 사물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지만 오감이 주는 가벼운 달콤함을 뛰어 넘을줄 알아야 한다.
마음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현대사회에서 늘 반짝이는 것은 일회성이기 때문이다. 자꾸보면 질린다는 말이다.

음악(DJ)을 직업으로 10년을 해오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음악의 과거사에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던 것은 과거의 음악이 현재의 음악과 미래의 음악을 보여준 다는 것이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이며, 디자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뿌리깊은 나무를 보듯이, 과거는 현재를 존재시키는 나무의 뿌리이다. 뿌리없는 디자인은 그저 지금 당장 내 배를 체울수 있는 상술에 불과하다.
상술에 불과한 것은 반짝이는 것 처럼 일회성이 짙기 마련이다.
그 일회성들은 하나가 트랜드가 되면 무수히 생기는 아류들이 반짝이는 것이라 비유 할 수도 있겠다.
반짝이는 것은 오래가질 못한다.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오리지널리티, 정통성이 깊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크고 깊지 않다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어떤 거대한, 깊은 것을 봤을때 느꼈을때 스스로 작아지기 마련이다.
그런 것이 없다면, 본체만체 지나칠 것이다.

중국고대시대때에도 지금 현재 사회의 문제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점들이 있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안함을 찾는다. 그러나 그 편안하기 위해서 뒤따르는 책임과 고통의 시간들을 회피하려는 사회적인 성향이 갈수록 더 짙어지고 있다.

모두가 행복하면 그걸 행복이라 말하지 못하듯이, 모두가 잘 살면 잘 사는게 아니듯이,
천사를 믿으면 악마를 믿어야 하듯이, 영혼을 믿으면 귀신을 믿어야 하듯이..

흐르는 물은 굽어 흐르고 높은 곳에서 빨리 떨어지고, 깊은 웅덩이에서는 그 웅덩이를 가득 체워야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듯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힘든 것이라 할지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현재 세상은 어떤 특정 이론이나 사상보단 다양성을 그래도 점점 더 존중해주는 세상으로 변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말한 이런 것들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도 분명 무수히 많을 수 있다.
나 역시 충분히 그러하리라고 생각을 한다.

위에서 길게 말한 의견은 디자인을 년수로 10년을 해오면서, 공부하면서 느낀 것들을 적절한 알콜로 인해 배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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